고독에 대하여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나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일까.

늘 나는 혼자가 좋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얼마전 가족들과 함께 호숫가 산책길을 걷고 있었을 때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같이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을 때는 무척 당황스러웠다.

다시 한번 물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나의 사람들’이 없다면 정말 이런게 아무 소용도 없어?‘

혼자도 괜찮다고 답이 나오길 바랬지만 아니었다.

나의 정직한 느낌은 ’사람들이 없다면 인생에 의미가 없어‘ 였다.

이 풍경은 오래전 홀로 독일의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봤던 숲과 비슷했다.

흐린 하늘,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의 숲, 고요히 흐르는 강.

성년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택한 배낭 여행.

지구 반대편 낯선 도시에서 밀려드는 새로운 자극들로 마음은 분주했지만 고요한 가을의 숲과 강을 만났던 그 순간에 나는 아마도 처음으로 ’고독‘을 만났던 것 같다.

남의 나라, 남의 도시,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

사람의 사람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인정‘ 이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장소.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어떤 생각과 어떤 느낌으로 그 낯선 장소들을 걷고 있었던 것일까.

큰 배낭을 짊어지고 홀홀 단신.

그때의 경험은 인생에서 내가 ’혼자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늘 혼자였고, 혼자가 편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아이를 낳고 나서도 나는 ‘혼자’였다.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야 하는 것이었고 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못할 것이었다.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고 동반자가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나는 ‘혼자’였다.

’혼자인 나‘

이것이 내가 기억하고 있던, 내가 알고 있던 나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외롭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너무도 뜻밖이었다.

외로워도 괜찮았는데, 혼자여도 괜찮았는데, 왜 지금의 나는 혼자가 두려운 거지?

다른 이들이 없다면 나는 텅 비어버릴 것 같다.

내가 돌봐야 하는 가족이 없다면, 내가 챙겨줘야할 사람들이 없다면 나는 텅 비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그 아름다움이 내 눈에서, 내 탄식에서, 내 머릿속에서 끝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무슨 의미인가?

외롭다.

엄마로서가 아닌, 배우자로서가 아닌 나는 누구이지?

자식으로부터 평가받고 배우자로부터 평가받는 내가 아니면 나는 누구이지?

이 질문이 진짜라면 예전처럼 분주하게 사회 생활을 하고 있었어도 언젠가는 이 질문을 맞딱뜨리지 않았을까?

다른 이들이 사라진다면, 다른 이들로부터의 평가가 사라진다면,

남겨진 ’나‘는 누구일까?

그 시절 배낭을 메고 혼자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걷고 있던 나는 ’나의 미래‘였다.

’가능성‘과 ’실현 계획‘으로 분주했던 생각 덩어리였다.

혼자가 좋다고 느꼈던 것은 ‘사회적 성장’이라는 목표가 있어서였던 것일까?

그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혼자됨이 무서운 것일까?

도서관에서 아들이 읽기에 좋을 책을 고른다.

아들이 없다면 이 일을 하고 있지 않겠지.

하지만 도서관이 좋다. 책 냄새가 좋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위한 책을 읽을 것인가?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느끼고 시간이 지난다.

그러고 나면 나는 무엇이지? 무엇이 남지?

요리를 해 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챙겨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을까?

홀로 남겨진 초라한 모습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이며 나는 어떤 존재일 것인가?

’욕망‘에 대해 달관 하는 것.

겪어보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교훈.

한발짝 떨어져 그 모든 군상을 보지 않는다면 얻지 못할 자유.

텅빈 내가 두려워 무엇인가 채워 넣고자 한다면 나는 아직도 그 군상들 틈에서 허우적대고 있을 뿐이다.

생각이 도달하지 못하는 답.

생각을 멈춘 현실은, 나는 편안한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만족스럽다.

이제 무엇을 하지? 무엇을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런 생각 없이 그저 현재에 머무른다면, 나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겠지.

나는 누구인가? 에 대한 생각의 나래를 펼치고 있지 않다면,

나는 알 수 없는 그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겠지.

누군가의 평가가 있겠지만 그것은 언제든 변할 뿐더러 진실과는 동떨어진 아주 작은 파편에 불과한 정보일 뿐이다.

그런 조각을 집어 들어 ’이게 나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카페를 나가면, 어딘가를 걷고 있고 무엇인가를 보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면,

여러 욕망이 일어나겠지.

그 욕망에 상호작용하는 여러 생각들이 일어나겠지.

여러 감정들이 일어나겠지.

그리고 모두 사그라진다.

불편함도, 웃음도, 정직하지 못한 어색함도, 슬픔도 일어나고 또 사그라든다.

궁극적으로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인가?

아니,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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